2008/10/18 03:51
시간이야기 [4] 시간을 느끼는 글 분류없음2008/10/18 03:51
(1)
시간을 테마로 이야기를 연재하기로 마음먹기 전부터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.
고민은 내가 생각해도 좀 엉뚱했다. 물론 시간도 얼마든지 다른 소재들처럼 다루어질 수 있겠지만, 시간에 대해 알고 있는 밑천을 총동원해서 글을 쓴다 하더라도, 정작 그 글을 읽는 사람이 시간을 느끼지 못하고 시간을 단지 글의 소재로 받아들인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거였다.
이를테면 가을, 고향, 첫사랑, 추억, 짝꿍 등을 소재로 삼아 글을 쓴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.
"그런데 시간은 그렇게만 다루어질 수 없지 않은가?"
시간으로부터 벗어나 ㅡ 나로부터 시간을 완전히 분리시킨 상태에서 ㅡ 시간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? 시간은 시간이니까.
우리는 시간을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. 어떠한 것도 상상할 수 없다. 글을 쓰는 행위도 글을 읽는 행위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.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필자의 고민은 커져만 갔다.
그러던 중 장난끼가 발동하더니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.
(2)
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.
나는 지금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한다.
푸른시간 (19XX ~ )
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다음의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.
첫째는 '나와 같이' 살아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경우이다.
당연히 내 이름(필명) 뒤의 괄호 안에는 출생연도만 적혀 있고 사망연도 네 자리 숫자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이다. 이 빈 칸을 바라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짓는다.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시선이 오른쪽 괄호에 멈춘다. 그리고는 '닫기' 괄호가 상징하는 것을 생각한다. 아마도 독자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. 적어도 이 글을 읽었으니까.
둘째는 '나는 이미 죽었고' 그 이후에 살아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 경우이다.
그런데 이 경우라도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. 글을 쓰고 있는 지금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지 모르지만 괄호 안의 빈 칸은 여전히 비워져 있을 테니까. 묘비라면 탄생연도와 사망연도 각각 네 자리 숫자가 괄호 안을 꽉 채우고 있겠지만 나와 관련된 글이나 신상정보엔 빈 칸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.
(3)
지금까지 '나와의 관계'라는 측면에서 두 가지 경우로 나눠 보았다. 당신은 어느 쪽에 해당하는가? 뜬금없이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사람의 생과 사를 기준으로 어느 쪽에 속하냐고 물어오니 불쾌감이 들 수도 있다. 우연히 이 글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으니까.
덧붙이는 말
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? 혹시 당신이 필자의 필명 뒤에 있는 괄호 안의 빈 칸을 보았기 때문에 두번 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을 몰랐다면 이해해 주기 바란다.
내 손으로 빈 칸을 직접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? 하하하.
